이진영 베로니카 수녀님

이진영 베로니카 수녀님

안녕하세요?
저는 올 해 초 종신서원을 하고 귀국해서 지금은 성심여자중학교에서 국어교사 소임을 받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도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한 생을 기쁘고 의미있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제겐 예수님이 꼭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보여주신 행동, 그분이 사람들을 대하는 눈길과 태도,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저를 강하게 끌었습니다.

그러나 그분 말고도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존재는 많았습니다.
여행, 영화와 책(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아름다움과 인간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살아온 방식, 그들의 생각들의 결정체),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우정과 연인 관계), 참교육 운동에 투신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교사들이 주는 도전과 감동, 나도 그런 교사로 살고 싶은 소망…

그런데, 교사로서의 제 삶에서 가장 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새로 옮겨간 남자 고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과 국어수업을 하면서 저는 국어교사로서, 담임으로서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격한 원칙 없이 그저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분위기로 학급을 운영해 가고 싶은 이상만 앞섰던 저는 하루하루 학생들과의 힘겨루기에 지쳐갔고 국어수업에 대한 의욕과 흥미도 잃어갔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무렵, 학교로부터의 탈출, 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수단의 하나로 그럴 듯하게 떠오른 것이 수도성소였습니다!!!

물론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때나 유아세례를 받고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수도성소를 권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넓은 세상을 깊이 체험하며 제 꿈을 이루고 자유롭게 치열하게 살고 싶었던 저는 수도자의 삶의 모습이 답답해 보였기 때문에 제 편에서 그런 제안에 거리를 두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청소년시기부터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은 여행가나 기자, 혹은 외교관이었습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자유롭게! 치열하게!
삶의 진수를 맛보며 온 몸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며 삶을 살고 싶은 열정이 샘솟았지요!

그러나 그런 이십대 때에도 제 마음 한 켠에는 성인들의 저술이나 영적인 내용의 책들에 대한 강한 끌림과 성경말씀에 대한 끌림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젊음이 주는 선물, 아름다움과 열정과 자유로움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전진만 하고 싶었던 제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진학을 한 것부터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4학년 때, 임용고시와 기자시험 준비 중 택일을 앞두고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사도 적성에 맞았고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임고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첫 해에는 고배를 마시고 재수를 거쳐 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남자 고등학교로 옮겨가기 전까지 4년여 동안은 교사로서의 안정된 삶과 여유있는 시간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행과 독서, 영화와 친구들, 동료교사들과의 만남 등. 물론 그 사이 영적 독서와 피정으로 신앙적 목마름을 채워가는 여정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맞닥뜨린 교사로서의 한계 체험 앞에서 저는 신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내공이 약한 저를 처절하게 대면했습니다. 저를 지탱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 제게 삶의 자양분을 주고 힘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붙잡고 매달릴 것은 하느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기에 했던 피정이 바로 영신수련 8일 피정이었습니다.
그 피정 중, 저는 물과 피를 쏟으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발치에 서 있었습니다.
그분이 흘리시는 물과 피를 온 몸으로 맞으며 서 있던 제 안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왜 네 상처에만 집중하고 너를 찌르는 아이들이 가진 상처는 그 아픔은 보지 못하니?”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의 바윗덩이가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돌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려지듯, 제 마음은 한없이 가볍고 평화로워졌습니다. 눈물과 함께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샘솟았습니다.
집에서, 학교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받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꼬이고 뒤틀린 아이들의 상처받고 아픈 마음이 제 마음에 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십일 년 뒤, 로마 빌라란테 수녀원에서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30일 피정을 하던 중,
저는 그 오래고도 새로운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됩니다.

“진영아, 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니?”
“네가 본 것, 느낀 것이 옳다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니?”

그 말씀이 제 가슴을 파고 들면서,
깊은 회심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 바로 그분뿐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십여 년 동안, 제가 뭐 그렇게 많이 변했겠습니까?
첫 서원 전, 다시 한 번의 고비를 겪고,
유기서원기 후반에 또 한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많이도 흔들리고, 묻고 또 묻고 하며 살아왔습니다.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안은 채,
종신서원이라는 비장한 관문 앞에서
감사하게도 저는 예수님 앞에서 정직하게 저를 열어보일 수 있었고
그런 제게 그분이 건네신 그 질문이 저를 내리쳤습니다, 죽비처럼.

수도자가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저는 오롯이 그분만을 갈망하고 따르고자 하고 듣고자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분 때문에, 그분이 아니면 삶이 행복하고 기쁘지 않기에
다른 모든 것이 하루에도 수십 번 나를 넘어뜨리고 헤집고 상채기를 주어도
그분 말씀과 그분 눈길, 그분 마음이 다시 새롭게 나를 일으켜 세우고, 위로하고 힘을 주기에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고 닮고 싶어서 그분과 함께 사는 사람이지요.
그분의 소망과 꿈을 내 것으로 삼아 함께 울고 웃으며 그 꿈을 이루어 가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처럼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공동체의 일원.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중심을 근원을 의식하고 거기로 돌아가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그 중심에 지식이나 지혜, 능력, 자유로움, 혹은 건강이나 안전, 인간 관계 등이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시지요!
그러나 하루에도 얼마나 자주 그 중심을 잊어버리고 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가, 영적인 성찰이 없이는 수도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기도로써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며 살고자 하는 사람,
제가 삶으로 알아들은 수도자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