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 마들렌 소피 바라는 1851년 성 이냐시오 축일에 성심수녀회 기원에 대해 강연하면서 성심수녀회의 영성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는 데에 온전히 바쳐진 단체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 단체는 그분의 마음을 알고 사랑하는 일을 연마하는 수녀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수녀회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교육 사업을 통해 예수 성심을 드러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며, 그밖에 회원들이 하고 있는 다른 모든 일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피 수녀는 성심수녀회 수녀들이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한 공동생활을 하고 공동의 사도적 활동에 열중함으로써 예수성심을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셨다.
성심수녀회 2008년도 세계총회는 현대 세계에서 성심수녀회의 영성을 다시 숙고하고 새롭게 표현해야 한다는 도전에 응답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성심수녀회의 영성: 모닥불, 촛불, 우물, 식탁 주위의 대화”라는 주제로 성심수녀회 영성의 가시적 표현이라 여겨지는 다섯 주제를 채택하였다.
우리는 이 다섯 우선주제가 우리 영성으로 들어가는 다섯 개의 문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우리는 성령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리라는 것(묵시 21:5)과 매일의 삶에서 행동과 말로 그것들을 실천할 때, 새롭고 살아 있는 힘으로 우리의 영성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확신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5년을 봉헌생활의 해로 선포하시며
세상의 수도자들에게 세상을 깨우라 하셨습니다.
이 시대 수도자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여
복음적 사명에 더 충실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자매수녀님의 사랑을 믿고
나는 이 종신 서원을 발합니다. (종신서원 문에서)
성심수녀회의 은사인 관상과 친교의 삶을 사는 중에 사명을 위한 우리의 봉헌을 보다 새롭게 하며, 주님의 복음이 가르치는 바, 순명, 청빈, 정결의 삶에 있어서 매일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첫서원식 전례에서)
비둘기는 성령의 활동을, 모자이크로 표현된 물은 인간적 우주적 요인들의 조화를, 3개의 별은 수도자들이 세상에서 일상적으로 살고자 하는 삼위일체적 사랑의 순환성과 관계성을, 다면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상존하는(<복음의 기쁨>, 236항 참조) 세상을 상징한다. 주제어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봉헌생활: ‘복음, 예언, 희망’이다.
세계 가톨릭교회가 함께 지내는 ‘봉헌생활의 해’(Year of Consecrated Life)가 2014년 대림 제1주일인 11월 30일(일)에 개막된다. ‘봉헌생활’(Consecrated Life)이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삶의 형태로서,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교회에 헌신하는 수도자들의 삶을 가리킨다.* 가톨릭교회는 해마다 2월 2일을 ‘봉헌생활의 날’로 정해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신자들의 수도생활 이해를 돕고 있다.
‘봉헌생활의 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수도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Perfectae Caritatis, 1965.10.28) 반포 50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제정됐다. 2013년 11월 세계 남자수도회 장상(長上)**연합회 총회에 참석한 수도회 대표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접견한 자리에서 교황청 수도회성 고위 성직자들이 ‘봉헌생활의 해’를 제안했고, 교황이 이를 수락한 것이다.
교황청 수도회성(정식 명칭: 봉헌생활회와 사도생활단 성) 장관 아비스 추기경은 2014년 1월 바티칸에서 가진 봉헌생활의 해 발표 기자회견에서, “(수도자들이) 공의회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은총의 세월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희망으로 미래를 끌어안고 현재를 열정적으로 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증언하며 세상을 일깨우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행사들에 앞서 봉헌생활의 해의 취지를 알려주는 문헌으로는 교황청 수도회성이 2014년 2월 2일에 발표한 회람 <기뻐하십시오!>(Rejoice!)가 있다. 회람은 구약성경 이사야서(특히 65-66장)에 수록된 기쁨과 관련한 구절들,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과 수도자들에게 하신 연설문들을 인용해 봉헌생활에서 기쁨이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봉헌생활은 기쁜 소식을 구현하라는 부르심이고, 하느님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에 대한 관계 안에서 예수님의 생활양식과 행동방식을 받아들이라는 부르심이다(5항). 수도자들의 사명은 동시대인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고 주님의 자비를 증언하는 일이다(8항). 수도자들은 효율의 문화, 버리는 문화의 흐름에 맞서 친교와 만남의 문화를 위해 봉사해야 하며(10항), 가난한 이들을 만나러 가는 두려움과 조직이 주는 피상적 안정을 버리고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11항).
회람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에서 발췌한 질문들로 끝맺는다. 질문 내용은 “우리의 기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덧없는 문화’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수도회 양성 담당자가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느님을 위한 간절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 “나는 형제자매들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가?” “우리는 훌륭한 전망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진부하며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계획들에 만족하는가?” 등이다.
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성심수녀회에 있어, JPIC에 대한 투신은…
연민(COMPASSION)으로부터 흘러나오고…
관계(RELATIONSHIP)를 통하여 살며…
변혁(TRANSFORMATION)을 향하여 움직입니다.
“우리는 “교육하는 것 그 자체가 정의의 행위임”을 확신한다. 우리에게는 모든 교육적 노력들을 평등하고 모든 이를 품으며 비폭력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쪽으로 향하게 할 책임이 있다. 이는 모든 사람들과 온 우주가 생명, 곧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하느님의 심오한 소망임을 믿기 때문이다. 어떤 사도적 활동에 참여하든 우리의 교육적 사명은 배제된 이들과의 연대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2008 총회문서에서)
이 글은 가톨릭 중등 교육자회보 (2014.9. 제77호)에 실려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남겨야 할 진정한 유산
화상도박경마장으로부터 교육환경 지키기에서 출발한 1년간의 여정.
성심여자중학교
임태연 수녀
제가 근무하는 성심여중·고는 과거 용산 신학교의 자리로서 그 한가운데는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안치되었었던 예수성심성당이 있어 현재 성지로 지정된 곳입니다. 바로 이웃한 곳인, 신부님이 돌아가신 새남터 성지로 가는 길에 최근 지상 18층과 지하 7층인 총 25층의 초대형 화상도박경마장이 들어서면서 저희 학교와 지역주민들은 이 건물의 주인인 공기업 ‘마사회’의 사행산업에 대해, 연대를 통한 저항을 펼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내적으로는 이 산업이 우리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적 성찰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지난 1년간 이 반대를 해 오는 과정에서 화상경마장이 지역을 어떻게 손상시키고, 한 개별 인간과 그 가정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다른 지역의 사례를 통해 배우고, 일깨우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학교 가까이 위치한 이 건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마음으로 동의하고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내면에서는 어떤 학습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왜 이것을 반대하는가? 내 지역에서만 몰아내면 다 해결되는가? 우리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이런 질문들을 하면서 우리는 저항의 근본적 동기에 대한 성찰을 날카롭게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다 분명하게 도와 준 것이 지난 6월 28일에 일어났습니다.
마사회가 임시개장이라는 명분하에 기습적으로 개장을 하는 덕분(?)에 저희들은 그곳을 들어오는 손님? 고객님들을 직접 보기 시작했습니다. 개장을 막기 위해 몸으로 저항한 저희들은 그분들로부터 심한 욕설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욕설을 넘어서서 그 뒤에 숨은 그분들의 가난함은 저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곳을 들어오는 분들의 대부분의 얼굴에는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좌절과 무기력의 눈빛이었습니다. 중독이 갖는 가장 큰 특징. 즉 삶이 자기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는, 그래서 요행을 바라게 되는 가엾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곳을 들어오는 분들 중에 부유하거나 품위를 가진 분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서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가정을 몰살시켜 얻은 돈이, 저 거대한 세금으로 쓰이는 것임을 눈으로 목격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화상경마도박장의 민낯을 보는 것을 통해 저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를 보다 근본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두려워할 것은, 도박장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주변의 무질서한 퇴폐업소들과 취객들의 공포스러운 모습만이 아닙니다.
저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한명 한명의 영혼의 손상입니다. 지역의 평범한 서민들을 중독으로 몰아넣은 후 얻어진 거액의 수입이 세금수익이라는 명분 앞에서 모든 것이 합리화되고 용인되는 것을 소리 없는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각인시키는 손상입니다. 이는 판단의 힘을 앗아가는 지성의 손상이며, 자기 눈앞에서 인간성의 파괴를 목격하면서도 돈 앞에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는 양심의 손상인 것입니다. 이를 묵인하는 것은 우리의 반교육적 무책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매주 경마장 앞에서 거행하는 미사 때의 강론입니다. “우리의 이 연대는 용산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이는 대한민국 전체를 정화하는 상징적 저항이다.” 즉 도박장을 우리 구에서만 몰아낸다면 우리의 저항은 복음적 저항이 아니라 내 지역만 생각하는 동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저항을 통해 학생들에게 남겨야 할 진정한 유산은 인간성의 손상에 대한 깊은 연민과 분노, 그리고 연대의 기술일 것입니다.
우리의 이 싸움을 지켜본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그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한 침묵하는 구성원으로 겨우 생존하고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감히 바랍니다.